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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라코리 메드레세 (금으로 꾸며진곳) 풍부한 금으로 장식 되는 돔입니다. 레기스탄. 사마르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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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중앙아시아에서 실크로드 모습을 가장 잘 간적하고 있는 곳인 우즈베키스탄 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마르간트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보여주는 곳입니다. 사마르칸트는 많은 별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 위의 찬란한 장소,동방의 로마, 알라가 지켜주시는 도시 지구의 얼굴 실크로드의 심장, 이슬람 세상의 귀한 진주 등 등. 뿐만 아니라 사마르칸트에 대한 많은 전설과 동화, 노래가 전해진입니다.

그 명성과 어울리게 현재에도 사마르칸트는 엣날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써의 모습을 위풍당당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마르칸트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은 몇 세기 이전의 건축물이 아직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실크로드가 남기고 간 문화들이 지금까지 전승되어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사마르칸트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한 여러가지 학설이 있지만 교역지, 사거리의 뜻을 가지고 있는 고대어 사마랴 (Samariya)라는 단어가 어원일거라고 추측합니다. 사마르칸트는 오랜 기간동안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역지였을 뿐만아니라 엣날 문영의 중심, 중앙아시아 지역의 민족들의 역사, 문화와 조로아스터교, 불교,기독교와 이슬람이 지나가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르칸트는 아미르 티무르가 다스리는 동안 중국 인근에서 이스탄불까지, 인도 북부에서 불가강까지 이르는 웅대한 제국의 수도의 역할을 함으로써 문화,학문적으로 빛나는 시기를 맞게되었습니다. 티무르는 사마르칸트에 거대한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을 만듦으로써 예술 과 문화를 꽃피웠고, 그의 손자 울루그벡은 당대 최고의 학자와 작가를 불러들여 학문을 널리 융성하게 하여 사마르칸트의 명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사마르칸트는 엣날 그대로 보존되어 현재까지도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써 당당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소그디아나 입니다.

2750년 전 현재 사마르칸트의 구시가지인 아프로시욥 언덕 부근에 소그드 (Sog'd)인이 문명을 세우고 이를 소그디아나라고 칭했습니다. 에로부터 이 부근은 극히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적절한 기후 천연자원과 깨끗한 물 사냥감이 풍부한 산과 골짜기, 자랍숀 강의 풍요로운 헤택을 입어 물자가 풍부하고 문화수준도 높았습니다. 이처럼 좋은 조건 덕분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 중 하나가 생겼으며 수도는 사마르칸트였습니다. 이 지역은 타고난 풍부함으로 항상 모두가 노리는 지역이었으며 기원전 6세기 즈음 엣날 페르시아 왕조의 왕들이 이 곳으로 온 것처럼 많은 왕들이 거주한 곳이 될수 있었습니다.


사마르칸트의 공기

사마르칸트의 공기가 다른 지역보다 너무 깨끗합니다. 왜냐하면 사마르칸트는 아주 좋은 곳에서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사마르칸트의 공기에 대한절설도 있었습니다. 엣날에 살았던 왕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하기 전에 여러 곳에 고기를 걸어 두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걸어둔 고기 중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을 고르고 그 지역을 수도로 하기로 했엇습니다. 그 때 가장 고기 상태가 좋았던 곳이 사마르칸트였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르칸트의 공기가 아주 좋으니까 고기의 상태가 좋았었습니다. 사마르칸트 공기는 좋아서 사마르칸트 빵과 물이 아주 맛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난 과일도 맛이 있었습니다. 이것의 이유가 공기 입니다. 또 사마르칸트의 게절도 아주 좋아 합니다. 겨울에 춤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고 시원 합니다. 그래서 사마르칸트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마르칸트 농업

사마르칸트의 의곽에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농사를 짓습니다. 사마르칸트에는 농사를 짓는 농지가 아주 넓고, 여러 지역의 기후에 맞게 농사를짓습니다.사마르칸트의 농산품은 여로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제가 사는 불룬구르 지역에는 감자, 당근, 양파, 파, 양배추, 콩, 호박, 토마토, 오이, 고추, 사탕무, 옥수수, 밀, 열무, 녹두, 마늘, 쌀, 여러 가지 양념, 미나리, 수박, 참외, 딸기, 포도 등의 농사를 짓습니다. 또 사마르칸트의 다른 지역에서는 목화도 심고 있습니다.

우리 고향 사마르간트의 농업 분야는 아주 발달했습니다. 마을 농부들이 사게절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자기 농산품을 수장에 팔고 있습니다. 또 우리 농민들이 여러 가지 과일을 재배합니다. 에를 들면 사과, 배, 감, 복숭아, 살구, 체리, 무화과, 석류, 서양자두 등이 있습니다. 우리 고향 사마르칸트는 마치 천국처럼 아름답슴니다.


레기스탄(Registan Complex)

레기스탄(Registan Complex)왕궁 앞의 광장을 레기스탄이라고 하는 이른 중앙아시아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샤흐리삽스, 타슈켄트에 있었고 부하라에는 지금까지도 존재합니다.

레기스탄은 ‘모래로 된 땅’이라는 뜻입니다. 왕궁 주위를 흐르는 운하에 정기적으로 물이 높아지면 물이 넘쳐나며 모래가 많이 퇴적되어서 이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 광장이 생겨나기 전에는 주위에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도공, 대장장이, 유리제조자 등의 공방들이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이 사마르칸트를 침략하여 파괴한 후 사람들이 이 곳 남쪽 외관으로 이사 왔습니다. 이 곳 이 도시 신시간 되었습니다. 시장이 새겼고 도시의 주요 사원이 생겼다고 합니다.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광장은 중앙아시아의 훌륭한 유적지 중의 하나입니다. 이 유적지에는 중세 사마르칸트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으며 사마르칸트의 수세기에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곳은 아미르 티무르 때 이 광장은 행정,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격인처럼 사마르칸트에서는 모든 길이 레기스탄을 향합니다. 레기스탄은 세 개의 건축물 – 왼쪽의 울루그벡 메드레세, 오른쪽의 쉐르도르 메드레세 그리고 가운데의 틸라코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울루그벡 메드레세(Ulughbek Madrassah)

울루그벡 메드레세(Ulughbek Madrassah)아미르 티무르 왕의 손자 울루그벡이 만든 메드레세 (이슬람 신학교) 그 당시 가장 큰 교육시설 이었습니다. 종교 뿐만 아니라 수학, 천문학, 철학,화술 등의 과목을 개설하고 당시 가장 뒤어난 학자들이 교육을 담당하여 친란한 문화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쉐르도르 메드레세(Sherdor Madrassah)

쉐르도르 메드레세(Sherdor Madrassah)울룩그벡 메드레세 건설 2세기 후에 쉐르도르 신학교와 틸라코리 사원이 건설되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세 건물이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의 시대에 따른 겅축양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17 세기에 들어 사마르칸트의 바하두르 영주는 울루그벡 메드레세 건너편에 쉐르 도르 메드레세를 건설합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울룩벡이 만든 하나코가 있싰지만 지진으로 무너져버렸습니다. 영주는 쉐르도르를 중앙의 뜰은 2 층으로 된 방으로 둘러싸였고, 맞은편에 있는 울루그벡 메드레세의 모습을 본따 만들었습니다. 울루그벡 메드레세와 달리 사원은 없고 충 52 개의 방이 있습니다.




틸라코리 메드레세(Tillya-Kari Madrassah)

틸라코리 메드레세(Tillya-Kari Madrassah)바하두르 영주는 과장의 북쪽에 시원 겸 신학교인 틸라코리 (금으로 꾸며진 곳)를 세웠습니다. 당시 도시에는 민바르 (종교지도자가 설교하는 높은 자리)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예배를 드릴 수 있는 대사원이 없었습니다. (당시 비비-하늠은 붕괴되어 시원의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틸라코리는 신학교이면서예배를 드리는 사원의 역할도 맡았습니다. 이 건축물은 다른 건물의 모습을 모사하지 않고 독창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사원을 꾸민 기술은 군달 (금을 사용하여 벽에 부조기법으로 문양을 새기는 기술) 이라고 하는 데 벽면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여러 색으로 칠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내부를 금으로 꾸몄기 때문에 틸라코리라고 합니다.



구르 아미르(Gur Emir Mausoleum)

구르 아미르(Gur Emir Mausoleum)는 “왕의 무덤” 이라는 뜻으로 아미르 티무르가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안장되어 있는 영며입니다. 원래는 1403년 이란 원정에서 병사한 장소 무함마드 술탄(Muhammad Sultan)의 무덤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 더 나아가 일족의 묘가 되었습니다. 그 후 1405년 중국 원정 중에 오트라르 (O’trar: 현재 카착흐스탄에 있는 도시) 에서 급사한 티무르도 이 곳에 안장되었습니다.






비비하늠(Bibi-Hanim Mosque)

비비하늠(Bibi-Hanim Mosque)은 가장 높은 귀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비비하늠은 아미르 티무르가 가장 총애하던 사라이 물크하늠 부인이 왕을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1399년에서 1404년까지 아무르 티무르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비비하늠의 아름다움은 바로 중앙에 있는 모스크의 크고 푸른 돔입니다. 돔 지지대에는 알라에 대한 찬사의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뜰의 중앙에는 울루그벡이 세운 코란 경대가 나마있습니다. 비비하늠 사원의 건너편은 원래 사원과 함께 만들어지 신학교여습니다. 신학교의 뜰에는 비비하늠이 자신의 어머미 영묘를 만들었고 후에 자신도 그곳에 안장되었습니다.




샤흐진다(Shahi Zinda Mausoleum)

샤흐진다(Shahi Zinda Mausoleum)바로 이 전설 때문에 그와 이 영묘는 ‘살아있는왕’이란 뜻의 샤흐진다가 되었습니다. 총길이 200미터, 폭 40미터의 규모를 자랑하는 샤흐진다는 ‘살아 있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처음 이곳에 만들어 진쿠삼이 븐아바즈의 영묘 (11세기) 때문에이런 이름을 갖게되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쿠삼 이븐 아바즈는 메카의 시장이었으며 마흐메트의 사촌으로 이슬람의 선교사였습니다. 샤흐진다의 건물들은 112세기에서 20세기까지 만들어졌으며, 현재의 정문은 울루그벡이 1434-1435년에 만들고 자신의 2살 난아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울루그벡이 세운 천문대(Observatory of Mirzo Ulugbek)

울루그벡이 세운 천문대(Observatory of Mirzo Ulugbek)1419-1429년. 울룩벡은 아미르 티무르 왕의 손자로 훌륭한 천문학자, 수학자,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레기스탄의 울룩벡 신학교와 천문대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천문학교도 만들었습니다. 울룩벡이 세운 천문학교에서는 당대 유명한 학자들이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그 중에는 당시 사람들 플라톤에 버금간다고 칭송했던 울루그벡의 스승 가즈-자데 루데 루미(Qozi-Zoda Rumiy)와 유명한 수학자 지야시딘 잠쉬드 카쉬(Giyosiddin Jamshid Koshiy)를 비롯하여 울루그벡의 제자이며 프톨레마이오스라고 칭송받았던 알리-구스지(Ali-Kushchi)도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호자 다니에르(Khodja Daniyar)

호자 다니에르(Khodja Daniyar)아프로시욥 북쪽 외각에 시욥 (Siyob: 검은 물)강가에 위치합니다. 호자 다니에르로 들어간는 길은 시욥 강을 지나는 달리 바로 옆에 있습니다. 대문을 지나 옛날 모습이 남아있는 바위절벽과 강을 따라 돌아가면 언덕 위로 다니에르의 영묘가 보입니다. 다니엘은 성졍에도 나오는 인물로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의 세게 3 대 종교에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다니엘은 기원진 603년 출생하였고 다비드 왕의 혈족관계 에 있는 귀족출신이라 합니다. 뛰어난 능력 덕분에 바빌론 왕이 지도자 세 명으로 임명했습니다. 노년에 수즈 (이란의 한 도시)로 이주하였고 기원전 532년에 숨을 거두어 왕의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다른 학설에 따르면 90세까지 살았다고도 합니다. 다니엘은 매우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심리학자이며 지혜로운 지도자이자 훌륭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리스 알랙산더 대왕의 페르사아 제국의 침략, 예수의 출현 등 정확한에언 에언을 남겼기 때문에 전세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구약에 그의 대한 언급이 있고, 유고, 유대교의 경전 등의 옛날 책에도 언급되었습니다.


사마르칸트 종이공방(Samarkandian Paper)

사마르칸트 종이공방(Samarkandian Paper)뿡나무를 이용하여 전통적인 방식으로 중이를 만드는 것을 재현하는 공방.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옛날 중국으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이 땅으로 전해졌습니다. 사마르칸트에서는 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중이가 만들어졌습니다. 마 섬유와 뿡나무를 이용하여 만드는 사마르칸트의 종이는 내 구성이 높은데다가 비단처럼 부드럽고, 번집 없이 색을 선망하게 잘 흡수했습니다. 때문에 이곳에서 만든 종이는 일명 ‘비단 종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수출했는데 그 가치가 마치보석과도 같이 귀했습니다.

몇 년 전에 코니 길 (Koni Gil)라는 시골에서, 메로스 (meros:유산) 라는 수공업 단체의 회원들이옛날 전통을 그대로 살려 만든 종이를 세계에 선부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엿날 방식 그대로물레방아를 돌려 뿡나무로 종이를 만드는데, 한구의 제지방식과 놀랄 정도로 비슷합니다. 이 종이를 세밀화 화가들,엣날 책을 고치는 사람들이 사용합니다. 손님들이 이 공방을 방문해서 이 과정을 볼 수 있습을 뿐만 아니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가기 전에 미리 전화로 방문에 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시욥 바자르 앞 (샤히진다 방향)에서 ‘코니길’ (Koni Gil) 행 버스 118 번을 타고 종이 공장 (코고즈 자봇)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거의 종점에 가까워졌을 때 세워줍니다. 버스를 타기 전에 꼭 코니길에 가는지 물어보고 타는 것이 좋습니다.


사마르칸트 빵

사마르칸트 빵사마르칸트의 빵이 세상에서 아주 유명합니다. 사마르칸트의 빵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사마르칸트 빵을 다른 시골에서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이 사갑니다. 사마르칸트에 역사적인 아름다운 유적과 함께 빵도 있었습니다.

빵 만들기: 물, 소금, 밀가루로 만든 반족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반족으로 뭔가 모양을 만듭니다. 그 다음에 40분 동안 요리합니다.




극장 “엘 메로스 티 El Meros”

‘민족의 유산’ 이라는 뜻의 "엘 메로스"는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젊고 활력있는 극장입니다. 이 곳에서는 ‘유일한 영원의 순간’ 이라는 공연을 상연 합니다. 공연의 형식은 코스튬 – 퍼포먼스에 가깝습니다. 청동기 시대부터 현대 전통의상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특장을 반영한 찬란하고 화려한 의상들과 매력적인 음악, 할기찬 춤이 한데 어루러진 멋진 공연입니다. 모든 옷들은 확실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미리 예약해야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관람료는 1인당 15달러지만 미리 예약한다면 좀 더 낮출 수 있습니다.


사마르칸트의 대학교 (Samarkand State Institute of Foreign Languages)

사마르칸트에 있는 대학교들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대학교는 사마르칸트 국립 외국어대학입니다. 그 대학교에서 많은 언어를 가르쳐 줍니다. 에를 들면 영어, 한국어, 독일어,불러, 아랍어 등 많은 언어를 공부할수 있습니다.

그 대학교는 3개의 건물로 되어있습니다.본관 건물 옆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온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가 있습니다. 기숙사는 크고 너무 싸서 편합니다. 수업 시작하는 시간은 8시입니다. 수업은 3교시, 4교시에 끝납니다. 우리는 공부하고 있는 언어가 한국어입니다. 우리 대학교에는 많은 편의 시설이 있어서 공부하고 있는 언어가 한국어입니다. 우리 대학교에는 많은 편의 시설이 있어서 공부하기가 재미있습니다. 본관을 3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본관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본관 2층으로 올라가면 코이카 사무실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많은 컴퓨터가 있슴니다.

거기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고, 사전에서 모르는 단어를 찿을 수 있고, 책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이 대학교에서 한국어 외에 영어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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